배터리로 옮기다
2010년 무렵, 나는 분야를 크게 바꿨다. IT를 떠나 배터리팩 제조로 옮긴 것이다. 전기차와 전기자전거, 재생에너지 저장장치에 대한 관심이 막 커지면서 2차전지 시장이 빠르게 자라던 시기였다. 한 회사에서 배터리팩 사업부를 새로 맡아, 전기자전거와 산업용 기기에 들어가는 팩을 개발하고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다.
왜 생소한 분야로 갔나
섹션 제목: “왜 생소한 분야로 갔나”주변에서는 잘하던 일을 두고 왜 생소한 분야로 가느냐고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만큼 낯설지 않았다.
배터리의 상태를 읽고 충·방전을 제어하는 BMS는 결국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었다. 셀의 전압과 온도를 끊임없이 측정해 판단하고 보호하는 구조는, 예전에 다루던 데이터 시스템과 본질이 같았다. 부품을 제때 확보하는 공급망 관리도 데이터 웨어하우스의 응용에 가까웠고, 수십 개의 셀과 보호회로를 하나로 묶는 팩 설계는 그 자체가 시스템 통합 작업이었다. IT에서 익힌 사고방식이 제조 현장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만든 것들, 그리고 기술
섹션 제목: “만든 것들, 그리고 기술”이 시기에 전기자전거용 팩으로 국내 여러 업체에 공급했다. 산업용 특수 기기, 의료기기, 그리고 신뢰성이 특히 중요한 분야의 팩까지 범위를 넓혔다. 작은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영역을 다루면서, 품질과 안전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습관이 더 단단해졌다.
기술적으로는 BMS의 잔량 추정 알고리즘을 다듬고, CAN 통신과 배터리 표준 프로토콜을 적용하는 일에 깊이 들어갔다. 셀을 직렬·병렬로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압과 용량, 안전 특성이 달라지는데, 그 설계를 용도에 맞게 잡는 것이 핵심이었다. 해외에도 납품했다. 일본과 영국 등으로 수출하면서 각국의 인증과 규격을 맞췄는데, 국제 표준에 맞춰 문서와 명세를 정리하는 일은 IT 시절 늘 하던 작업의 연장이었다.
기술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섹션 제목: “기술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배터리 외에 광학 설계 제품을 개발해 해외에 수출하기도 했다. 빛을 멀리, 정확히 보내려면 밝기만 키울 게 아니라 빛이 나가는 구조 자체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분야는 데이터에서 배터리로, 다시 광학으로 넘나들었지만 일하는 방식은 늘 같았다. 흐름을 보고, 병목을 찾고, 데이터로 확인한다.
이 시기를 지나며 확신이 하나 생겼다. 기술은 생각만큼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도메인이 달라도 문제를 구조로 보는 눈은 그대로 옮겨 간다. 그 확신이 다음 결정, 곧 내 회사를 세우는 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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