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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사람이 아닌 'AI 에이전트가 일하는 회사'를 만드는가

2026년 4월 어느 날, 나는 AI 코딩 도구에게 연차관리 프로그램을 짜게 했다. 결과물은 훌륭했다. 그리고 동시에 충격이었다. 20년 전 내가 Visual Basic과 C#으로 직접 만들던 것과 100% 똑같았기 때문이다. DB가 있고, 테이블이 있고, PK·FK·인덱스가 있고, 화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막혔다.

“인공지능을 ERP에 어떻게 결합한다는 거지? 파이썬 코드 한 줄 안에 인공지능이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오픈소스 에이전트를 서버에 설치해봤자 그건 그냥 설치된 프로그램일 뿐이고, 내가 만드는 시스템과 무슨 관계지?”

이 질문이 모든 것의 씨앗이었다.

나는 신진형, ㈜에스엘파워 대표이사다. IT를 20년 했고(데이터웨어하우스·BI에서 출발했다), 배터리팩을 18년 만들었다. 우리 회사는 퍼스널 모빌리티·로봇(AMR/AGV)·UPS/ESS·방송 카메라용 리튬이온·LFP 배터리팩을 B2B로 설계·생산한다. 수백 곳의 거래처에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납품하는 제조사다.

진짜 질문은 ‘AI를 어떻게 쓰냐’가 아니었다

섹션 제목: “진짜 질문은 ‘AI를 어떻게 쓰냐’가 아니었다”

답을 찾아가는 동안 더 큰 것을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회사의 두뇌가 어디에 있느냐’**였다.

우리 회사의 핵심 노하우 — BMS 견적을 뽑는 감각, 까다로운 거래처를 응대하는 방식, KC·EMC 인증 서류를 꾸미는 절차 — 는 ERP 어디에도 없다. 사람 머릿속에만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떠나면, 그 두뇌도 함께 떠난다.

ERP에 남는 것은 ‘견적서 번호 Q-2026-0412, 금액 3,200만원’이라는 결과뿐이다. ‘왜 그 단가로 책정했는가’, ‘이 고객에겐 왜 분할 납품을 제안했는가’라는 판단의 근거는 그 사람 머릿속에만 있다.

회사가 한 사람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섹션 제목: “회사가 한 사람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이것이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 직원이 퇴사하면 BMS 견적·거래처 응대·인증 노하우가 함께 사라진다. 인수인계는 거의 실패한다.
  • 핵심 인력 1명이 퇴사하면 평균 3~6개월간 그 업무 품질이 무너진다(추정).
  • 비싸게 도입한 기성 ERP는 메뉴 50개 중 30%만 쓰인다. 자산의 70%가 잠들어 있다.

판단이 대표와 핵심 인력에게만 집중된 상태 — 이것이 **단일 장애점(SPOF, Single Point of Failure)**이다. 회사가 한 사람의 머리에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다.

오래 막혀 있다가, 한 문장에 도달했다.

“AI를 ERP에 넣는 것이 아니라, ERP가 AI에게 도구를 빌려주는 것이다.”

사람이 화면을 일일이 눌러야 움직이는 시스템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일하고 사람은 승인만 하는 시스템. 그것이 내가 만들기로 한 SL.AIMS다.

이 시스템의 진짜 가치는 ‘ERP를 잘 쓰는 신입사원’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20년 노하우를 가진 경영자 자신을 회사에 영속화하는 것 — 사람이 떠나도 회사의 판단 기준은 시스템에 남는 구조. 그것이 내가 말하는 기업의 영속성이다. 회사의 두뇌를 사람 머릿속에서 시스템 내부로 옮기는 일. ‘AI를 잘 쓰는 회사’가 아니라 ‘AI가 회사를 운영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

두려움을 설계의 1번 입력값으로

섹션 제목: “두려움을 설계의 1번 입력값으로”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못 박은 원칙 하나.

이 시스템의 설계자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오픈소스가 두렵고, AI의 환각이 두렵고, AI 자체가 두렵다. 그 두려움은 무지가 아니라 20년 경력자의 정확한 직감이다.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1번 입력값’**으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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